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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주식 기업

기아차

by 무무엠베지킴이 2022.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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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999년 아시아자동차와 함께 현대자동차에 인수되었고, 기아차 판매, 아시아자동차, 기아대전판매, 아시아차판매 등 4개 사를 통합함.
국내(소하리, 화성, 광주)와 미국, 슬로바키아, 멕시코 공장의 생산능력을 모두 합하면 연간 263만대 규모임.
전체 매출액의 약 40% 내외를 내수시장에서 판매하고 있으며, 북중미 및 유럽 시장 등 해외에서의 판매 비중은 약 60% 수준임.

1905년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태어난 기아 창립자 김철호는 1922년에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1930년 삼화 제작소를 설립하여 자동차, 자전거 부품 생산으로 이익을 얻었고, 동시에 일본 기계 산업의 기술을 습득하였다. 이후 일본의 패전이 가시화되자, 대한민국으로 귀국하였다.
1944년 12월 김철호는 영등포에 경성 정공이라는 이름의 회사를 설립하였으며, 1950년 기아 산업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2년 뒤 삼천리자전거를 개업하여 자전거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부터 삼륜 트럭을 생산하였으며, 1970년 11월 10일에 경기도 시흥에 20만 평 규모의 소하리(현재의 광명시 소하동) 공장을 착공하여 1973년 6월에 완공하였다. 이는 대한민국의 첫 종합 자동차 공장으로, 연간 25,000대의 생산 능력을 갖추었다. 1974년 4월 6일 마쓰다 패밀리아(3세대)를 기초로 하여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만든 세단 승용차 브리사의 시판 허가가 났다. [1] 이후 프랑스 푸조, 이탈리아 피아트의 승용차를 라이선스 생산하며 유럽의 승용차 기술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고, 1976년 아시아 자동차공업, 기아기공 등 다른 회사를 잇달아 인수했다.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가 내려졌던 1980년에는 승용차를 생산할 수 없게 되어 잠시 경영에 타격을 입었으나, 다행히 기술제휴 선인 마쓰다의 모델을 국산화한 봉고로 승합차 시장에 진출하여 대한민국 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였다.
합리화 조치가 해제되자 승용차 시장에 재진입한 기아 산업은 1987년에 마쓰다와 포드의 기술 제휴를 통하여 소형 월드카 프라이드를 출시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마쓰다 카펠라(4세대)를 베이스로 한 전륜구동 중형 세단 콩코드, 1989년에는 준중형 승용차인 캐피탈을 개발하였다. 1990년에 기아 산업에서 기아자동차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포드와의 제휴는 프라이드(미국 수출명 페스티바)에 이어 아벨라(미국 수출명 아스파이어)로 이어졌으나, 모기업인 기아 그룹이 경영난을 겪은 후 1998년에 국제 입찰을 통하여 1999년 현대자동차에 인수되었다. 2000년 현대그룹에서 분리되어 현대자동차그룹으로 출범하게 되면서 포드와의 제휴 관계가 청산되었다.
1993년 도심형 사륜구동 승용차 스포티지를 독자 개발, 생산하였다. 미국 시장에 진출한 것도 이때부터로, 프라이드 후속 차종인 리오, 스펙트라, 옵티마, 쏘렌토, 쎄라토 등 꾸준히 새로운 차종을 수출하면서 2003년에는 미국 수출 연간 20만대를 돌파하였다. 2005년에는 수출만계 500만 대를 달성하였다.
기아 그룹은 1990년대 말 자금난으로 1997년 7월 15일에 부도 유예 협약이 적용된 후, 같은 해 10월 22일에 법정관리를 받았다. 국제 입찰 끝에 1999년 현대그룹 계열의 현대자동차가 기아자동차를 인수하였고, 2000년에 법정관리를 마쳤다. 2000년 8월 31일 기아자동차가 현대그룹에서 분리되었고, 2001년 4월 1일 부로 대규모 30대 기업 집단인 현대자동차그룹으로 편입되었다. 2000년 8월 현대그룹 왕자의 난 이후 정몽구가 현대그룹에서 현대자동차를 중심으로 9개 계열사를 들고나와 현대자동차그룹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이후 2000년에 12월에 현대자동차그룹이 양재동 사옥을 지으면서 기아의 조직이 모두 양재동으로 옮겨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여의도 사옥을 현대카드에 넘기고 현대자동차와 같은 건물을 쓰게 되었다.
2000년 12월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에 기아빌딩을 개점하여 남수원지점이 인계동 기아빌딩으로 이사하였다.
2002년 중국 둥펑기차 및 위에다 그룹과 합작해 둥펑위에다기아를 세웠고, 2005년 현대자동차와 함께 FIFA 공식 파트너로 지정된 뒤 2007년 슬로바키아 질라나 시에 현지공장을 세웠으며, 20대 위주 사이트 '펀키아'를 열었다.
2010년 미국 조지아 주 웨스트포인트 시에 공장을 세웠고, 2011년에는 현대-기아 자동차 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하여 정통성을 강화한 기념으로, 현대자동차그룹으로 간판을 바꿔 달면서 이름이 빠지게 되었다. 정상화된 후 2001년 8월 1일 해태 타이거즈를 공식 인수, 전통을 승계하여 KIA 타이거즈 프로야구단이 창단하였다. 2003년 현대자동차그룹이 글로벌 환경 경영 선포식을 하였다. 2004년 기아자동차가 슬로바키아에 글로벌 환경 조인식에 대한 양해 각서를 체결하였고, 2005년 현대자동차와 함께 경기도 용인시에 환경 기술연구소를 준공하였으며, 2006년 기아자동차가 미국 조지아주 웨스트포인트에 현지 공장을 착공하여 2010년에 완공되었다. 2007년 기아자동차 슬로바키아 공장이 준공되었고, 여수 세계박람회에 현대자동차와 함께 참여하였다. 같은 해 중국에 염성 제2공장이 준공되었다.
현재 기아는 현대자동차그룹의 계열사이며, 서울특별시 서초구 헌릉로 12 (양재동)에 본사를 두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에 기술연구소,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공장,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의 화성 공장(과거 아산만 공장), 광주광역시 서구 내방동과 광산구 안청동에 광주 공장[2]이 있으며, 전국에 20개 출고 센터와 미국,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 곳곳에 현지법인을 두고 있다.
또한, 2005년 기아자동차는 아우디-폭스바겐 그룹 출신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인 피터 슈라이어(Peter Schreyer)를 영입하여 디자인 총괄 부사장으로 임명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디자인 경영을 추진하고 있다. 슈라이어 부임 이후 아우디-폭스바겐의 디자인 흐름이 조금씩 들어가게 되었다.
이후 2011년 3월 24일에는 수출 1,000만대를 돌파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29일에는 레이(RAY)라는 새로운 박스형 경차를 내놓았다. 2021년 1월 7일 새로운 로고와 브랜드 슬로건을 공개했다.

2021년 3월 22일 기아자동차에서 기아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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