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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주식 기업

포스코 홀딩스

by 무무엠베지킴이 2022.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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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포스코 홀딩스는 자동차, 조선, 가전 등 산업에 원자재를 공급하는 철강 사업(포스코)을 주력으로 영위하고 있으며, 무역/건설/에너지를 포함한 친환경인프라사업(포스코인터내셔널, 포스코건설, 포스코에너지 등)도 운영.

리튬, 니켈, 양극재, 음극재, 리사이클링 등 EV배터리소재 및 수소 사업과 같은 친환경 미래소재 분야(포스코케미칼 포스코 아르헨티나 등)로 사업확장 중.

2022년 3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사명을 포스코에서 포스코 홀딩스로 변경

초창기 한글 공식 회사명은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 영어 공식 회사명은 Pohang Iron and Steel Co. Ltd였는데 외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약칭하여 POSCO로 불렸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제2차 경제개발계획 기간(1967년~1971년)에 즈음하여, 철강공업의 다각적인 전략성이 인정되기 시작하면서 장기적인 철강공업 육성계획이 수립되었다. 이에 따라, 1963년에 5개국 8개사의 연합체인 대한국제제철차관단 (Korea International Steel Associates, KISA)이 결성되어 1968년까지 예비 협정, 기본 협정, 추가협정의 세 차례에 걸쳐 협상이 이루어졌다. KISA와의 협상이 진행되면서 1967년 7월에는 포항이 제철소의 입지로 결정되었고 같은 해 9월에는 대한중석이 종합 제철 사업의 주체로 선정되었다. 이어 1968년 4월 1일에 대한중석을 모태로 하여 포항제철이 창립되었다.

그 후 2001년 9월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라는 사명에서 '주식회사 포스코(POSCO)'로 변경되었다.

2021년 12월 10일 포스코는 이사회에서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의결했으며 2022년 1월 주주총회에서 승인받을 예정이다. 지주회사로의 전환 사유는“지속 성장과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왔으며 가장 성공적이고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그룹의 미래 신사업을 발굴하고, 사업 및 투자 관리를 전담하는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라 판단”이며 존속 지주회사 포스코 홀딩스(가칭)를 상장사로 유지하고, 신설 철강 사업회사 포스코(가칭)로 물적으로 나눌 계획이다. 포스코 홀딩스가 사업회사 포스코 지분을 100% 보유하되, 사업회사 포스코는 비상장사로 두는 구조다. 

철강 일관작업 형태의 포항제철은 1976년 5월 제2기 설비확장공사를 준공, 조강 기준 연산 260만t 규모로 확대되었으며 1978년 12월에는 조강기준 연산 550만t 규모의 제3기 설비확장공사를 준공했다. 1981년 2월에는 조강 기준 연산 850만t 규모의 제4기 설비확장공사를 준공했는데, 제3기 준공 당시 철강 수요의 지속적인 증가추세 전망으로 제2 제철공장의 건설계획이 수립·추진되었다. 1987년 5월 조강 기준 연산 270만t 규모의 광양 제1기 설비공사가 완공되었고 1988년 10월에는 동일 규모의 제2기 설비공사가 준공되었다. 포항종합제철은 포항의 일관제철소에 이은 광양에 제1·2기 설비를 완공·가동하게 시키고 있어 설비 능력의 확대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포철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조강 기준 연산 270만t 규모의 광양 제3기 설비확장사업을 1990년 중에 완공한 후 조강 기준 연산 330만t 규모의 광양 제3기 설비확장 사업을 1990년 중에 완공한 후 조강 기준 연산 330만t 규모의 제4기 설비확장 사업이 1992년 완공되어 조강 자급률을 더욱 증가시켰다.

포스코는 2018년 7월, 제9대 최정우 회장의 취임과 함께 회사의 새로운 경영 비전 'With POSCO'를 선포했다. ‘With POSCO’ 달성을 위한 전략으로는 고객, 공급사, 협력사 등 비즈니스 파트너와 함께 가치를 추구하는 Business With POSCO, 더 나은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가는 Society With POSCO, 신뢰와 창의의 기업문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People With POSCO를 제시했다. 또한 단순히 이윤을 창출해 내는 경제 단위가 아닌 사회적 책임을 완수해 가야 하는 ‘기업 시민’으로써의 역할을 강조했다.

포항제철 (현 포스코)의 초대 회장이었던 박태준은 포철을 창업 25년이란 짧은 기간에 세계적인 철강업체로 키운 철강업계의 거목으로 꼽혀 왔다. 설립 당시부터 정치 외풍으로부터 포스코를 지키는 울타리 역할을 해 온 박태준은 김영삼 정부와 불화로 결국 정권 수립 직전인 1992년 10월 5일 회장직 사퇴서를 제출했다. 박태준은 김영삼 민자당 대통령 후보의 선거대책위 원장직을 거절하고 백의종군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포철은 긴급이사회를 소집, 박태준의 사퇴 번의(飜意)를 촉구키로 결의하기도 하였다. 회장직은 황경로 당시 부회장이 넘겨받았다. 10월 9일 오후, 긴급이사회는 대표이사 회장에 황경로 부회장, 대표이사 부회장에 정명식 사장, 대표이사 사장에 박득표 대표이사 부사장을 각각 선임했다. 1993년 3월 12일 제25회 정기주주총회에서 신임회장에 정명식 현 부회장, 사장에는 조말수 수석 부사장이 승진, 선임되었다. 또한 박태준 명예회장과 황경로 회장 박득표 사장의 사표가 각각 수리되었다. 황경로는 임기 6개월을 간신히 채운 것이다. 이날 박태준의 측근 인사들도 배제되었다. 1993년 말, 박태준은 일본에서 월간지 "한국논단"과의 회견에서 한국 정부와 포철을 강도 높게 비난했고, 특히 조말수 사장 등 개혁주의 세력을 비난했다. 1994년 1월 초, 인사 문제 등으로 정명식 회장과 조말수 사장 간의 갈등이 발생하였고, 이어 2명 모두 동반 퇴진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1994년 1월 2명은 사표를 제출하였다. 정명식 회장은 부회장에서 회장으로 승진한 지 1년여 만에 물러난 것이다. 1994년 3월 8일 제26기 정기주주총회에서 이들 2명의 사표가 수리, 퇴임하였다. 이렇게 약 2년간의 과도기를 거쳐 이 주주총회에서 김만제가 새 회장에 선임되었다. 재무장관 출신의 김만제는 사상 첫 외부 인사인 회장이었고 유일한 외부 인사 발탁 기록을 남겼다. 당시 포스코 지분을 재무부가 20.0%, 산업은행이 14.7% 보유하던 시절이어서 외부 인사에 대한 뒷말이 많았다. 그전까지 포스코 내부에서는 사장-부회장-회장 순으로 단계를 밟아 승진하는 절차를 깼다는 비판이 컸다. 김만제 회장은 김영삼 정부 시절에 4년간 포스코 수장직을 맡았다

포스코는 수직적인 문화를 가진 남자 초과 기업이다. 일단 박태준 명예회장을 위시한 창립멤버 대부분이 군인 출신이고, 제조업 중에서도 건설업과 더불어 현장이 가장 위험한 철강산업이기 때문에 수직적이고 일사불란한 문화가 강한 편에 속한다. 한마디로 군대 분위기가 강하다. 그래서인지 부사관, 장교 출신들을 그래도 조금 더 좋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그리고 포스코 부지 내에서 속도위반이나 안전 보호구 미착용 등 안전 수칙 위반으로 적발된다면 협력사의 경우에는 협력사의 대표이사가 출근 시간에 출근길에 나와서 전 직원들을 상대로 사과와 안전 다짐을 하기도 하고 부지 내에서 흡연이 3번 적발될 경우 이유 불문하고 포스코 출입문을 영구적으로 통과하지 못하는 등 상당히 강도가 강한 통제가 많다.
이렇게 포스코 내부적으로는 안전에 굉장히 신경을 쓰고 상황에 따라선 고압적으로 보일 정도로 강조하고 있지만 경쟁사인 현대제철과 함께 매년 중대 산업재해가 끊이질 않는 것을 보면 제철소 현장이 얼마나 위험하고 왜 이렇게 안전에 대해서는 이러한 태도로 나오는지 간접적으로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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